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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웅 × 홍경한: 말과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2025.08.22
INTERVIEW

배우로서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최근에는 아티스트로서도 주목받고 있는 박기웅. 한국의 미술평론가 홍경한과의 이번 대담 후편에서는, 전시 Future Superhero 에 담긴 생각과 작품 제목에 드러나는 언어에 대한 고집을 중심으로, 작가로서의 태도가 드러난다.

더 나아가 창작을 곁에서 도왔던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며, 개인의 기억과 예술적 창작이 교차하는 깊이 있는 서사가 펼쳐진다.

1편 읽기

빌런의 재해석과 ‘몽타주’ 시리즈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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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건네는 홍경한

홍경한: 2023년 롯데타워 서울스카이 전시에서 30만 명이 본 48명의 빌런, 이제는 왜 그들이 등장하게 됐는지 배경을 알겠습니다. 이번 화이트스톤 전시는 롯데 전시보다 서사성이 더 강한 것 같아요.


박기웅: 네. 롯데 전시는 비교적 직접적이었다면, 그 이후 작업에서는 미술 언어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전시는 만화 속 빌런이 주제였는데, 48 빌런즈 때도 일부 만화 속 빌런을 그리긴 했지만, 3D와 2D가 섞이면 튈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한 작품만 넣었습니다. 그러다 ‘내년에는 만화·애니메이션 속 빌런을 해보자’고 결심했고, 그렇게 작업했습니다. 또한 올해로 넘어오면서는 빌런뿐 아니라 아톰 같은 흑백 히어로도 함께 구성했습니다. ‘오션스 일레븐’처럼 선과 악이 애매한 캐릭터들도 포함했고요.

홍경한: 이번 작업들은 이전보다 서사가 있고, 질문을 던지는 느낌입니다. 대사도 등장하고요. 2024년 ‘몽타주’ 작업은 어떤 건가요?

박기웅: 몽타주(Montage) 시리즈, 디졸브(Dissolve) 시리즈, 디스토션(Distortion) 시리즈가 있었습니다. 디스토션은 아까 말씀드린 흐림 효과 작업이고, 몽타주는 영화 용어이지만 범인의 몽타주처럼 기억을 겹쳐 구성한 초상 작업입니다. 초상화 사이즈로, ‘몽타주’라는 중의적인 이름을 붙였습니다.

홍경한: 배우와 작가의 정체성이 분리될 수 없다는 말씀이네요.

박기웅: 네. 분리될 줄 알았는데, 해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서로 깊게 영향을 줍니다.

단어 선택과 상징이 이끄는 제목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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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스톤갤러리 서울

홍경한: 작품 제목 중 ‘티키티부’는 무슨 뜻인가요?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어요.

박기웅: 영어로는 ‘Everything is fine’ 정도의 의미입니다. 르네상스 시대 영국식 속어인데, 지금은 잘 쓰지 않죠. 저는 작품 제목을 즉흥적으로 정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미술은 여전히 어렵지만, 제목에서 궁금증을 던질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합니다. 베르나르 브네가 “작품 판단은 0.1초면 된다”라고 한 말이 있는데, 저도 직관적으로 탁 오는 제목을 찾으려고 합니다.

홍경한: 포트폴리오 제목들을 보니, 즉흥적으로 정한 건 없더군요.

박기웅: 네. 예를 들어, <Aight_PINK> 작품 속 앞에 있는 곰돌이와 뒤에 있는 곰돌이는 모두 영화 3D 애니메이션 역사상 사랑받은 캐릭터들입니다. 앞의 캐릭터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았고, 뒤의 캐릭터는 영어권에서 특히 사랑받았죠. 원래 색이 다른데, 일부러 핑크색을 칠하고 ‘됐냐?’ 하는 듯한 태도를 표현했습니다. 같은 빌런 캐릭터에도 질투나 부러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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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Ki-woong "Icon, iconic" 2025, 90.9 x 72.7 cm, oil on linen

홍경한: <Icon, iconic>작품은 종교적인 의미인가요? 예수의 모습 같기도 한데요.

박기웅: 아닙니다. 예수를 그린 것도, 특정 대상을 그린 것도 아닙니다. 다만 보는 사람에 따라 예수나 다른 아이콘을 떠올릴 수 있겠죠. 저는 아이콘이라는 개념 자체에 주목했습니다. 동그라미 세 개를 보면 미키마우스나 특정 캐릭터를 떠올리듯, 실제 이미지가 아니어도 상징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홍경한: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됩니다. ‘G’가 ‘God’이라는 뜻인가요?

박기웅: 아닙니다. ‘Swear to G’라는 문장에서 온 것으로, ‘신께 맹세한다’는 뜻입니다. 직접적으로 쓰기보다 은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홍경한: ‘서스 넛’이라는 제목도 특이하네요.

박기웅: ‘Sus Nut’입니다. ‘Suspicious’의 줄임말 ‘Sus’와 ‘Nut’을 합친 말로, 수상한 견과류라는 의미의 신조어입니다. 요즘 영어권 젊은 세대에서 많이 쓰는 표현이죠. 이 시리즈는 제 동생과 함께 조각 작업을 했고, 제 가족의 손길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결의의 말로서의 「Future Super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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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스톤갤러리 서울

박기웅: ‘더클러레이션(The Declaration)’ 시리즈는 제게 선언문 같은 작업입니다. ‘서스 넛’도 마찬가지로, 다짐이자 외침이죠. 작품 속에 ‘Future Superhero’라는 문구가 반복되는데, 미래에는 영웅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현실과 타협하는 부분도 있지만, 여전히 시작하는 세대에게는 응원의 메시지를, 제 또래와 윗세대에게는 위로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홍경한: 강한 다짐이 느껴집니다.

박기웅: 도상은 제가 직접 조각을 만들어 찍은 뒤, 실크스크린으로 재판해 페인팅 위에 얹었습니다. 여러 겹이 쌓인 작업이죠.

홍경한: 이번 ‘Future Superhero’ 전시는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박기웅: 개인적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던 중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제게 영웅 같은 존재 였습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슈퍼맨인 줄 알았죠. 나이가 들면서 그 크기가 변했지만, 여전히 가장 존경하는 분이셨습니다. 전시를 미루지 않고 진행한 건 제 다짐이자 외침이었습니다.

창작 속에 숨 쉬는 아버지와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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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누는 박기웅과 홍경한

박기웅: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조각 작품 도색 작업을 했습니다. 울면서 했어요. 아버지와 함께 있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아버지는 인테리어 일을 하셔서, 제가 작업할 때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특히 얇은 대나무를 깎아 여러 모양의 도구를 만들어 주셨고, 작품에 사용한 도색 도구들도 모두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것들이었죠.

홍경한: 아버님의 흔적이 작품 구석구석에 배어 있군요.

박기웅: 네. 심지어 쇠구슬을 택배로 보내주신 적도 있습니다. 물감에 넣어 잘 섞이게 하려고요. 아주 섬세한 분이셨습니다. 작업을 하면서도 ‘아버지, 어디까지 내다보신 거예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경한: 아버님은 배우로서든 미술가로서든, 작가님의 모든 활동을 지지하셨군요.

박기웅: 네.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남에게 피해 주지 말라는 말씀을 늘 하셨습니다.

홍경한: 오늘 궁금했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작품과 작업 방식뿐 아니라, 작가님의 개인적인 서사와 감정이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도 깊이 이해할 수 있었어요. 설명이 명확해서 장면이 그려지는 듯했고, 무엇보다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이번 전시와 앞으로의 작업이, 배우이자 작가로서의 박기웅이라는 한 사람의 세계를 더욱 단단하게 확장시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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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스톤갤러리 서울

하나하나의 단어를 정성스럽게 골라가며 자신만의 표현과 끊임없이 마주하는 박기웅. 배우로서의 경험과 작가로서의 감성이 겹쳐지는 그의 작품 세계에는, 강한 결의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향한 마음이 스며 있다.



박기웅:Future Super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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