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스톤 갤러리가 오는 8월 29일부터 10월 11일까지 한국 추상미술 작가 권순익의 개인전 《산에 비친 산, 물에 비친 물》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오랜 시간 이어온 작가의 대표 연작 〈틈〉을 중심으로, 최근 작업에서 시도한 새로운 조형적 변화까지 함께 선보이며 권순익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이번 전시 제목 《산에 비친 산, 물에 비친 물》은 권순익이 최근 작업에서 지향하는 태도를 함축한다.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존재한다는 제목처럼 작가는 작품을 통해 특정한 의미를 설명하거나 대상을 재현하기보다, 존재 자체가 지닌 감각과 울림을 보여주며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시선이 돋보인다. 이번 작업에 대해 언급한 ‘설명이 필요 없는 그림’이라는 표현 또한 이러한 태도와 통하는데, 그의 화폭은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가 아니라 자립하며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의 세계로 관람자 앞에 놓인다.

Interstice-Pile up & Rub (6-02), 2026, Mixed media on canvas, 116.8 × 91 cm

Interstice-Pile up & Rub (6-02), 2026, Mixed media on canvas, 116.8 × 91 cm

서울시립미술관 강세윤 학예연구사는 “작가는 화폭에 흑연을 바르고 문지르기를 반복하며 표면을 다진다. 그러면 빛을 머금은 흑연의 표면은 깊이 있는 질감을 조성하고, 손의 움직임은 미세한 결로 남는다. 점을 찍고 흑연을 문지르는 반복은 작가의 기본적인 작업 방식이다. 이런 행위는 작업 과정인 동시에 자신을 비워 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권순익이 언급한 가톨릭의 ‘nada’는 그의 작업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러니까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비워낼 때 비로소 더 큰 존재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오랜 반복과 절제된 행위 속에 조용히 스며든다.”고 말했다.

Mirage-Absence of Ego (3-01), 2026, Mixed media on canvas, 60.6 × 50.5 cm

Mirage-Absence of Ego (3-01), 2026, Mixed media on canvas, 60.6 × 50.5 cm

[참고 자료]

작품이 작품을 비춘다 ㅡ 권순익 《산에 비친 산, 물에 비친 물》

강세윤 (KANG Seyun)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권순익의 작품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의 두께이다. 그의 화폭은 쉽게 조형적 표정이 읽히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은 겹겹이 쌓여 리듬을 이루고, 흑연은 빛에 따라 미세하게 결을 드러낸다. 반복적인 손질과 그에 따른 마티에르, 그리고 화폭에 조형된 작은 틈은 오랜 시간 이어진 작업 과정을 묵묵히 증언한다.

작품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무수히 점을 찍고, 흑연을 문지르고, 물감을 다져 가는 과정을 오랜 시간 반복하며 조금씩 형성된다. 그 시간은 내적 밀도와 질서를 갖춰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완성된 결과보다 그 완성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 마음이 간다.

구상에서 출발한 작업은 2010년대 초반 이후 추상으로 방향을 튼다. 그것은 이전 작업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다. 화폭을 조성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이런 관심은 먼저〈무아(無我)〉연작으로 이어졌고, 이후〈적·연(積·硏)〉연작으로 확장되었다. 비록 시작된 시기는 다르지만 권순익은 두 연작을 함께 이어가며, 서로 다른 관심과 조형언어를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계속 확장하고 있다.

화이트스톤 갤러리에서 열리는《산에 비친 산, 물에 비친 물》은 이런 작업의 흐름에 놓여 있다. 오랫동안 다져 온〈무아(無我)〉와〈적·연(積·硏)〉연작을 중심으로 최근 시도한 새로운 기법을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채를 띤다.

구상을 지나 2010년대 초 추상으로 작업 방향을 튼 이후, 권순익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화폭을 조형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어떻게 형상화할 것인가가 중요해졌고, 작품은 몸의 움직임과 재료가 교접하는 장이 된다.

이런 변화는〈무아(無我)〉연작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화폭을 채우는 수많은 점은 작가가 도자기 작업에서 사용한 인화기법에서 비롯되었다. 도장을 찍듯 같은 형태를 반복하는 방식은 회화에서도 이어졌고, 점은 작품을 이루는 가장 작은 조형 단위가 된다. 반복되는 점들은 일정한 질서를 이루며, 그 과정에서 작품은 서서히 모습을 갖추어 간다.

흑연 또한 〈무아(無我)〉를 이루는 중요한 재료이다. 작가는 화폭에 흑연을 바르고 문지르기를 반복하며 표면을 다진다. 그러면 빛을 머금은 흑연의 표면은 깊이 있는 질감을 조성하고, 손의 움직임은 화폭에 미세한 결로 남는다.

점을 찍고 흑연을 문지르는 반복은, 작가의 기본적인 작업방식이다. 이런 행위는 작업 과정인 동시에 자신을 비워 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권순익이 언급한 가톨릭의 'nada'는 그의 작업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러니까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비워낼 때 비로소 더 큰 존재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오랜 반복과 절제된 행위 속에 조용히 스며든다.

〈무아(無我)〉는 반복을 통해 이미지가 형성되는 과정을 담아내는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은 이후 〈적·연(積·硏)〉에서 자연의 질서와 현재의 시간을 향한 탐구로 이어진다.

〈적·연(積·硏)〉에 이르러 권순익의 관심은 자연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것은 산과 물, 나무와 같은 풍경의 재현이 아니다. 작가는 자연을 움직이는 질서와 시간을 화폭에 옮기고자 한다. 가시적인 대상을 재현하기보다 자연이 스스로 생성하고 순환하는 원리를 조형언어로 풀어내려는 것이다.

이런 관심은 태극의 구조에서 비롯된 구성으로 이어진다. 화폭을 이루는 면들은 음과 양이 순환하는 원리에서 착안한 것으로, 하나의 형상이기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관계를 담고 있다. 서로 다른 면은 맞닿고 밀려나며 긴장을 조성하고, 그 긴장 속에서 작품은 균형을 이루어 간다. 권순익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태극 형상을 재현하는 일일까? 아니다. 그보다 자연을 움직이는 질서가 작품에 깃들게 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색은 더욱 중요한 조형언어로 자리한다. 권순익이 오래전부터 언급해 온 '중간색'은 단청에 대한 관심에서 형성된 색채 감각과 맞닿아 있다. 단청의 색은 각각의 색이 홀로 존재하기보다 서로의 관계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하나의 공간을 완성한다. 권순익 역시 이러한 색채 감각을 작품으로 가져온다. 단청의 색을 통해 그 속에 깃든 기운과 호흡, 그리고 자연스러운 조화 방식을 작품으로 새롭게 풀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색은 화폭을 장식하기보다 면과 면 사이의 흐름을 이어주고, 자연의 질서를 드러내는 유기적인 언어가 된다.

〈적·연(積·硏)〉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틈'이다. 서로 맞닿은 면 사이에 조형한 작은 공간은 단순한 틈이 아니다. 음양이 순환하며 만나는 자리이자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현재가 머무는 공간이다. 작가는 이 틈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온전하게 존재하는 자리로 본다. 작품은 그 미세한 틈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품으면서, 우리의 시선을 언제나 현재로 되돌려 놓는다. 그래서 〈적·연(積·硏)〉의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있게 하는 살림의 시간이 된다.

《산에 비친 산, 물에 비친 물》이라는 이번 전시 제목은 권순익이 최근 작업에서 지향하는 태도를 담담하게 드러낸다. 산은 산을 비추고, 물은 물을 비춘다. 여기에는 무엇을 설명하거나 다른 의미로 치환하려는 의지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대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시선이 돋보인다. 작가가 이번 작업을 두고 언급한 '설명이 필요 없는 그림' 또한 이런 태도와 통한다. 그의 화폭은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매개체가 아니라 자립하며 존재한다.

이번 전시는 이런 작업의 흐름에서 새로운 가능성 또한 보여 준다. 작가는 최근 귀얄 기법을 작품으로 들여오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점을 찍고 흑연을 문지르며 화폭의 밀도를 다져 왔다면, 귀얄은 보다 넓은 붓질과 물질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작품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아직 그 변화의 방향을 단정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다져 온 권순익이 또 다른 조형 언어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돌이켜 보면, 권순익의 작품은 언제나 화폭을 조형하는 과정에 대한 탐구였다. 반복적인 점과 흑연의 축적으로 화폭을 경영해 온 〈무아(無我)〉, 그리고 자연의 질서와 현재의 시간을 담아 온 〈적·연(積·硏)〉은 서로 다른 관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작가의 내면세계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 연장선에서 작품을 조금 더 열어 두고, 설명보다 존재를, 의미보다 화폭 자체를 바라보려는 작가의 최근 태도를 밀도 있게 보여준다.

결국 그의 작품은 무엇을 말하기보다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묻는다. 작품은 더 이상 어떤 의미를 설명하거나 상징을 덧붙이는 자리가 아니다. 무수한 반복과 축적을 거쳐, 개성적인 조형세계로 존재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그 자체를 응시하게 한다. 작품이 작품을 비춘다. 그것이 '산에 비친 산'이고, '물에 비친 물'의 의미가 아닐까. 이는 권순익의 작업 태도이자 《산에 비친 산, 물에 비친 물》이 우리에게 건네는 조형적 몸짓이기도 하다.

SEOUL

서울시 용산구 소월로 70
+822 318 1012

Opening Hours: 11:00 - 19:00
Closed: 월요일
More Info

오프닝 및 출간기념회

2026. 8. 29 (토) 3 - 6pm
*오프닝과 권순익 그림 에세이 「틈에서 빛으로」 출간 기념회가 함께 진행됩니다.

ARTIST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작품에 관심이 있으시면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

최신 전시회 정보나 구독자 전용 혜택을 이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제출하면 확인 이메일을 받게 됩니다. 받은 이메일에 있는 링크를 클릭하여 등록을 완료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