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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로 시간을 새기다 | 김덕한 작가가 말하는 전통과 혁신

2025.10.22
INTERVIEW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옻칠 기법을 현대미술로 재구성하는 작가 김덕한. 무형 문화재 장인들로부터 습득한 전통 옻칠 기법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시간을 층처럼 쌓아 올린 작품을 선보인다. 전통 기법과의 만남부터 독자적인 창작 이념까지, 시간을 조각하는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복원 작업에서의 발견부터 층을 쌓는 옻칠 기법까지

김덕한 “Overlaid Series No.25-30-03” 2025, 75 × 75 cm, 패널에 옻칠

김덕한 “Overlaid Series No.25-30-03” 2025, 75 × 75 cm, 패널에 옻칠

ー아티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김덕한: 대학교 시절, 문화유산 복원 작업에 참여하며 수백 년의 시간이 응축된 유물들을 손으로 다루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표면에는 사람의 손길과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스며 있었죠. 그때 저는 예술이 단순히 형상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을 물질 속에 기록하는 행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 제 작업은 보이지 않는 시간을 드러내고, 그 흔적을 현재의 표면 위에 새겨 넣는 여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ー작품에서 옻칠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어떻게 이 재료를 활용하게 되었나요?

김덕한: 저는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선생님들과 명인들에게 옻칠을 배우며 재료의 물성과 역사, 그리고 기술의 깊이를 체득했습니다. 옻칠은 단순한 도료를 넘어 동아시아에서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재료이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지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역사성과 재료의 살아 있는 속성에 매료되었습니다. 전통적이지만 제 손에서는 동시대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습니다.

ー제작 과정에서 어떤 기법을 사용하시나요?

김덕한: 저는 옻을 여러 차례 덧입히고, 다시 갈아내며, 또다시 칠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거칩니다. 옻칠은 습도와 온도에 따라 서서히 경화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단단하고 깊은 광택을 내는 물질입니다. 그 느린 건조의 과정 속에서 옻은 공기와 만나 호흡하듯 변화하고, 그 표면에는 시간이 스며듭니다. 수십 번의 칠과 연마를 거듭하며, 층층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화면 속에 새겨 넣습니다.

시간과 기억의 공존, 회화를 넘어 공간적 차원으로

김덕한 “Overlaid Series No.25-30-02” 2025, 75 × 75 cm, 패널에 옻칠

김덕한 “Overlaid Series No.25-30-02” 2025, 75 × 75 cm, 패널에 옻칠

ー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영감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김덕한: 저는 ‘시간’을 가장 중요한 재료로 생각합니다. 기억, 흔적, 그리고 사라져 가는 것들이 한 화면 위에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전통 한복의 색감, 자연의 순환, 음악이나 우주의 리듬까지도 제게 영감이 됩니다. 쌓고 갈아내는 반복적인 과정은 단순히 표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결을 물질 속에 남기는 행위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평면 위에서 끊김 없이 이어지는 상태를 구현하고자 합니다.

ー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김덕한: 제 작품의 매끄러운 표면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수십 번의 칠과 연마를 통해 응축된 시간의 층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미세한 결과 빛의 반사, 깊이의 차이가 드러나며,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과 기다림,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낸 물질적 기억이 숨어 있습니다.

결국 제 작품은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과 기억이 응고된 흔적의 장(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람객이 그 표면을 마주할 때,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겹쳐보며 “시간과 기억을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전시”로 확장되길 바랍니다.

ー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표현이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김덕한: 앞으로는 옻칠을 회화적 차원을 넘어 건축적, 공간적 차원으로 확장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화면 위에 시간을 새겨왔다면, 이제는 공간 전체를 하나의 시간적 구조로 다루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프로젝트에서는 단순한 회화를 넘어, 시간을 기록하고 변환하며 전송하는 매개체로서 관람자가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김덕한 작가는 오래된 소재인 옻칠을 통해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기억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술이란 무엇인가. 매끄러운 표면에 깃든 무수한 층들처럼, 그의 창작은 앞으로도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시간을 새겨나갈 것이다.

김덕한: OVERLAID - 겹쳐진 시간, 기억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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