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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의 흔적: 카롤린 드네르보가 말하는 무용과 회화의 융합

2025.09.03
INTERVIEW

프랑스에 거주하는 캐롤린 드네르보(Caroline Denervaud)는 무용과 회화를 융합한 독창적인 창작 기법으로 기존 예술 표현의 개념을 뒤엎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신체의 움직임이 남기는 흔적에서 시작되어 최종적으로 완성된 회화로 승화되는 일련의 과정 전체를 포괄한다. 본 인터뷰에서는 그녀의 창작 핵심에 다가가 신체와 회화가 엮어내는 시적인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움직임이 이끈 예술의 출발점

Articles_Caroline_Denervaud_2025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

- 예술가로서의 여정에 무엇이 영감을 주었나요?

드네르보: 움직임입니다. 몸짓과 신체를 통해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전할 수 있다는 점이 저에게 큰 깨달음이었죠. 무용을 배우면서 신체에는 기억이 있고, 각각의 몸짓뿐 아니라 각자의 역사에 따라 고유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또한 걷기와 같은 아주 단순하고 본질적인 행위가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 저는 이러한 단순함과 정직함, 혹은 급진성을 공연과 움직임, 그리고 그 흔적 속에서, 나아가 최종 작품에서도 찾으려 합니다. 물론 최종 작품은 훨씬 더 복잡하지만요.

저는 종종 무의식적으로 감정에 이끌리며, 때로는 일종의 시적 감성에서 영감을 받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것과 변형 또한 저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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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 2024 Lara

- 무용과 아트를 융합하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겨났나요?

드네르보: 저는 항상 무용을 해왔어요. 사고로 무용을 계속할 수 없게 된 후, 관심을 회화로 옮겼습니다. 움직임과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표현을 10년간 옆에 두었어요.

제 생활 공간이 아틀리에이기도 했던 시기에, 밤 동안 큰 종이 롤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해보고 있었어요. 움직임의 흔적과 그것을 어떻게 시각화할지에 대해 작업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을 촬영했습니다. 아마도 밤은 남에게 보이지 않고 무용으로 돌아갈 수 있는 허락을 저에게 주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인스타그램에서 몇 개의 짧은 영상을 공유했지만, 제 회화 실습과 움직임 작업은 항상 따로였어요. 결국 둘은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었습니다. 신체가 남기는 흔적은 더 표현력이 풍부하고, 생생하며, 진실하고, 또한 의외성으로 가득했어요. 그것들은 딜레마나 질문처럼 느껴지는 구조에서 회화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제 작품의 전체상이 의미를 갖기 시작했어요.

몇 년 더 동안은 회화만 전시되었어요. 지금 저는 제 작품이 퍼포먼스 자체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창작 과정은 최종 회화만큼이나 중요해요. 물론 회화는 그 과정의 집대성이지만, 퍼포먼스 필름이나 영상의 스틸 컷, 또는 흔적의 사진도 보이게 하고 싶어요. 'Still Moving' 전시에서는 흔적, 스틸 컷, 회화, 비디오를 모두 같은 포맷으로 전시하기로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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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

재료와 색채로 탐구하는 표현의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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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the Studio 2022

- 작업에 사용하는 재료와 기법은 무엇인가요?

드네르보: 퍼포먼스와 움직임의 흔적을 남길 때는 주로 큰 린넨 천이나 때로는 롤지 위에서 작업합니다. 캔버스는 거친 질감 때문에 움직임이 제한되기도 하지만, 그림의 견고한 바탕이 되어줍니다. 목탄이나 분필, 때로는 잉크나 파스텔로 그리는데, 저는 몸이 움직이며 으깨버릴 수 있는 단단한 재료들(파스텔, 목탄, 분필)이 작업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잉크는 좀 더 유동적이어서 몸이 지나가면서 캔버스나 의상에 강렬한 자국을 남기기도 하죠.

흔적이 표면에 남으면 저는 '회화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 단계에서는 움직임이 즉흥적이지는 않지만, 큰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그 위에 서서 작업하기 때문에 몸은 여전히 몰입된 상태에 있습니다. 저는 카세인이라는 수용성 재료를 좋아하는데, 과슈와 비슷한 질감으로 안료와 섞어 나만의 색을 만들고, 투명도나 불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아크릴이나 파스텔을 약간 섞어 윤곽을 강조하거나 대비를 높이기도 합니다. 주로 손과 넓고 평평한 붓을 사용해 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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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

- 의상은 어떻게 선택하시나요?

드네르보: 의상은 형태와 색상을 기준으로 선택합니다. 형태는 움직임이나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기도 하고, 반대로 더 용이하게 만들기도 하죠. 개인적으로는 드레스나 스커트를 선호합니다. 소재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울이나 벨벳은 린넨에 걸리기 쉽고, 면은 흔적을 잘 받아들입니다. 색상 역시 이미지와 영상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대비를 형성하기도 하고, 때로는 앞으로 그릴 그림의 톤과 연결되는 암시를 주기도 하죠.

- 창작 과정에서 색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드네르보: 그림에서는 색을 미리 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죠. 보통은 편안하거나 중립적으로 느껴지는 색으로 시작하는데, 예를 들어 분홍색이 그렇습니다. 분홍은 부드럽고 저를 편안하게 해주며, 그림에서는 중간 톤을 잡아주어 위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반면, 노란색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검정과 흰색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업하는 동안 색은 차례차례 나타나면서 서로 어떻게 어우러질지, 조화롭거나 긴장감을 줄지, 흔적을 입체적이거나 때로는 거의 이야기처럼, 때로는 제어되지 않은 추상으로 변형시킬지를 시각화하려 노력합니다.

즉흥성과 수용, 그리고 더해지는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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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oline Denervaud “never stop playing” 2022, 200 × 250 cm, mixed media on canvas

- 당신의 예술에서는 순간적인 창조성이 중요한 것 같은데, 작업 전에 어떤 준비나 계획을 하시나요?

드네르보: 즉흥적인 움직임을 기반으로 작업한다는 것은 우연과 현재의 순간, 그리고 '밖으로 나와야만 하는 것'을 탐구할 여지를 남긴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자발성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도 바로 그 예상치 못한 요소들 때문입니다. 물론 때로는 실망하거나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모든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합니다. 다시 시작하지 않습니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남기기로 했다면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죠. 이러한 사고방식이 제 회화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때로는 제 움직임에 방향성을 부여하기 위해 아이디어나 개념, 혹은 문장에서 출발하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는 T.S. 엘리엇의 시에서 몇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전문에서 떼어낸 이 짧은 구절들은 거의 추상적인 형태로 느껴졌고, 그들이 불러일으킨 색상 팔레트, 핵심 단어들, 그리고 소리들을 바탕으로 작업을 전개했습니다.

순간 속에서 드러난 형상과 완성된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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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 2024 Lara 2

- 퍼포먼스 자체를 작품으로 선보이는 것과 완성된 회화를 작품으로 선보이는 경우, 어떤 차이가 있고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드네르보: 회화는 짧은 퍼포먼스 영상에서 시작해, 그 흔적을 거쳐 마침내 회화로 이어지는 전체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퍼포먼스는 날것이고 단순하죠. 그것이 바로 시작점이며, 과정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저는 퍼포먼스나 춤이 지닌 순간성을 좋아하지만, 그것을 영상으로 기록함으로써 시각적이면서도 움직이는 흔적을 남길 수 있습니다. 가끔 녹화된 퍼포먼스를 다시 보면, 그 안에서 우아함이나 연약함, 심지어 광기 같은 것들이 인상 깊게 느껴지기도 해요. 거기에는 일종의 즉흥성, '한 번의 촬영(one shot)'이 주는 생생함이 있습니다.

회화는 그 자체로 전시되고, 독립적으로 감상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퍼포먼스 영상을 함께 제시하면, 관객은 그 흔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회화로 이어졌는지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죠.

이 둘의 차이는 회화가 일종의 '완성된 오브제'로 기능하면서, 그 안에 춤과 흔적을 품고 있다는 점입니다. 반면 영상이나 라이브 퍼포먼스는 훨씬 더 연약하고 섬세하며, 더욱 내밀한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버전을 보여주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저에게는 창작의 계기와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 매우 흥미롭고 아름답다고 느껴집니다.

그렇긴 하지만 저는 회화를 '작품'으로 보고 있으며, 영상은 어쩌면 '기록'에 더 가까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영상 이미지도 회화만큼의 무게를 지닐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Articles_Caroline_Denervaud_2025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

- 작업을 통해 탐구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나 감정은 무엇인가요?

드네르보: 순간성(momentum), 취약성(vulnerability), 감각성(sensuality), 우연성(chance), 그리고 어쩌면 일종의 시적 표현(poetry)도 탐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체와 관련된 모든 것, 즉 몸이 스스로를 표현하고 움직이는 방식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몰입(immersion) 또한 제 작업에서 중심이 되는 주제입니다. 퍼포먼스를 할 때든, 색을 다룰 때든, 완성된 회화를 감상할 때든, 캔버스 속으로 '몸을 던지는' 행위가 바로 몰입이며, 이 몰입은 다시 제 몸을 캔버스로 되돌려보내는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 후 특정한 의상과 포즈를 선택함으로써 마치 제 몸이 그 회화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몰입을 담은 이미지는 대개 영상의 정지 장면(still image)에서 추출한 한 장면입니다. 몸이 움직임을 통해 흔적을 만들고, 그 흔적이 회화로 이어진 후, 다시 몸이 그 회화 안으로 돌아가는, 이러한 순환의 개념이 저에게는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표현 방식이나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드네르보: 저는 현재 영상과 텍스타일을 결합한 작업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퍼포먼스 영상의 정지 장면을 옷의 형태로 담아, 퍼포먼스의 에센스를 품은 의상을 제작하는 방식입니다. 퍼포먼스의 본질을 옷에 불어넣는 작업이죠. 오랫동안 의류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 요소를 작업에 더 적극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이 무척 즐겁습니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한 경험도 있어, 이 작업은 저의 세 가지 열정인 춤, 회화, 패션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의 창작 과정을 역으로 뒤집어보는 시도도 해보고 싶습니다. 안무를 먼저 구성한 뒤, 그 움직임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흔적으로 남게 되는지를 실험해보고 싶어요. 그 흔적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저는 협업에도 늘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작업을 3D 조각의 형태로 확장해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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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in Studio

카롤린 드네르보(Caroline Denervaud)의 작업은 몸의 기억과 표현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현대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춤, 회화, 패션이라는 세 가지 열정을 통합한 그녀의 태도는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예술의 경계를 확장해 나간다. 몸이 남긴 흔적이 회화로 이어지고, 다시 그 회화 속으로 되돌아가는 순환적 창작 과정은 그녀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카롤린 드네르보: Still Mo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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