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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시마 유 × 히지카타 메이지 | 일본화의 틀을 뛰어넘는 먹의 세계

2024.2.1
대담

히지카타 메이지 × 카와시마 유

카와사키시 오카모토 타로 미술관의 히지카타 메이지 관장과 작가의 대담을 통해 작품에 관한 깊은 이야기를 하는 시리즈의 제 4편으로 전통적인 일본화를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매끄럽게 전화시킨 작가 카와시마 유 를 만나본다.

카와시마는 2014년에 손보재팬 일본 코아미술관 주최의 공모전 「FACE」에서 그의 작품이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 신진 작가의 등용문으로서 주목을 모으고 있는 공모전에서의 수상을 통한 극적인 데뷔, 그리고 일본화를 제작하게 된 경위를 풀어간다.

『카와시마 유 : PATHOS』,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

현대아트의 등용문 「FACE」 공모전에서 그랑프리 수상

히지카타 : 카와시마 작가님과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작품은 몇 번인가 보았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카와시마 작가님의 작품을 인식하게 된 것은, FACE전에서 그랑프리를 탔을 때입니다.

카와시마:정확히 10년 전인 2013년에 수상했습니다. 제가 25살 때입니다.

히지카타:FACE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죠. 하지만 이미일본의 현대 미술계에서 이 전시회는 주목받고 있습니다. 작품도 꽤 완성도가 높죠. 『TOXIC』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어떤 의미로 지었나요?

카와시마:「TOXIC」 자체는 '유독', '유해한'이라는 뜻인데, 당시 제가 안고 있던 불안과 세상의 불온한 분위기가 전부 자신에게 닥치는 것 같은 가운데,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 좋을까? 어쩌면 이런 식으로 제멋대로인 자신의 감정을 들어 내 버리는 나 자신도 세상에서 보면 해로울지도 모른다. 그러한 여러가지 복합적인 생각을 작품에 담았기 때문에 "독=TOXIC" 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습니다.

사실성과 작품의 매력을 뒷받침하는 "물질성"

카와시마 유, 《EROSION》, 마지, 먹, 석채가루, 은박, 72.7 × 50.0 cm, 2023

히지카타:요즘은 사실 붐이라고 일컬어진 지 오래지만, 카와시마 작가님의 작품은 사실적이면서도 일본화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작품의 완성도 또한 높죠. 구체적인 기법을 알려주시겠어요?

카와시마:목제 패널에 전통수재종이를 붙여 거기에 먹과 석채가루로 채색해 가는 방법으로 전통적인 일본화 기법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직접 제작하는 검은색에 특징이 있습니다. 먹을 구리가루로 흑연화시키고 그것을 잘게 가루 형태로 만들어 최종적으로 아교에서 녹여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히지카타:그건 어떤 효과를 노리는 겁니까?

카와시마:하나는 소재로서의 물질성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검은색 속의 물질성을 준다, 이런 느낌일까요. 보통 먹물을 종이에 정착시키면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선이 생깁니다. 하지만 구리는 그런 모서리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구리를 추가하면 먹물이 둥그런 상태로 마르고 윤곽이 흐려지거든요. 완곡한 부분이나 앞의 직선인 부분 등, 소재가 화면에 붙은 듯한 인상을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릴 수 있습니다.

질감이나 생김새의 변화를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이 안료가 지금의 자신의 회화에 최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전통적인 일본화와 선인들에 대한 존경

은박이 부식되어지는 모습. 마치 시간의 흐름을 가두 듯 짙은 녹청색, 적청색, 적녹색 등 다양한 색상으로 변화한다.

히지카타:꽤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안료 연구를 하셨군요. 애초에 일본화로 나아가려고 생각한 계기는?

카와시마:일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유소년 시절입니다. 할아버지가 아끼던 화집을 몰래 본 게 계기가 돼서 처음 본 게 하시모토 마사쿠니(연대)의 화집이었는데, 꽤 멋있어 보였습니다. 숭고한 것을 만지고 있는 감각이라고 할까, 그림체나 질감도 매우 거룩해 보였고, 당시의 기억이 강하게 머리에 새겨져 있습니다.

히지카타:하시모토 마사쿠니(橋本雅邦)의 화집을 본 것은 몇 살 때?

카와시마:5, 6살 때였던 것 같습니다.

히지카타:그게 미술에 대한 매우 처음 체험이 되었네요.

카와시마:그러네요. 그때 본 색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갈색의 먹음직스러움과 조금 보랏빛처럼 보이기도 하고, 전체적인 공기감이랄까, 감촉이 있어 보였습니다. 당시 체험한 이미지가 현재에도 살아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히지카타:가호우(화가이름)도 그런 의미에서는 전통 회화의 맥락이면서 근대적인 감각도 있고. 그리고 선묘도 지극히 많으니까요.

소년에 있어서의 휴식이 인생의 주제로

히지카타 메이지 × 카와시마 유

중학교 시절은 검도를 한결같이 했고 미술은 제작하는 것은 휴식이었다는 카와시마 작가. 장래에는 손끝을 사용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부터 미술의 길을 선택해, 무리없이 미술 고등학교에 입학을 완수했다. 입학 후에는 다른 학생의 솜씨에 충격을 받았지만 그림그리기의 즐거움은 변함이 없었다. 유년기의 기억에서 일본화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아 대학에서는 일본화를 전공하게 되었다.

히지카타:아이치 미대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일본화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시절에는 어떤 공부를 하셨을까요?

카와시마:조금 거슬러 올라가지만, 대학 입학 전까지 재수를 했네요. 학교다닐 때는 도쿄예대가 지망이었기 때문에 여러 입시 학원에 다녔고 수험공부를 하는 시간이 꽤 길었기 때문에, 석고나 데생은 다른사람보다 꽤 많이 했습니다.

입학한 아이치 현립 예술 대학은 문화재수복으로 잘 알려진 대학이기 때문에 문화재를 접할 기회도 많아, 그림 재료나 기술을 깊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기술은 여기서 확실히 습득해 두고 싶다고 하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학부 4년간은 기술을 연마했습니다.

히지카타:재수할 때 2년 동안도 포함해서 상당히 엄격한 수행을 했군요. 저도 미대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이만큼 선을 그릴 수 있는 데생력이 있는 학생은 정말 적어요. 이 표현력은 보는 사람에게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나요?

카와시마:지금처럼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은 마츠무라 코지 선생님 덕분입니다. 제가 대학 입학했을 무렵에 마침 대학의 풍조가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때 마츠무라 선생님이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처음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술적인 지도는 있었지만 세계관이나 감각적인 부분은 비교적 자유롭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마주하며 작업을 하는 시간이 굉장히 길었죠.

석채가루를 거쳐 먹으로

카와시마 유, 《Ghost》, 마지, 먹, 암채, 은박, 65.2 × 65.2 cm, 2023

히지카타: 먹물을 주체로 한 작품은 언제부터 시작되나요?

카와시마:구체적으로는 학부의 4학년의 졸업 제작으로부터입니다. 그때까지는 계속 석채가루로 그리고 있었어요.

히지카타:두껍게 발라서?

카와시마:두껍게 발라서요. 엷게 칠하는 것보다 두껍게 칠하는 경우가 많았죠. 학부 졸업의 예비 제작 때에 제 석채가루기술을 전부 사용한, 절대 변명할 수 없는 것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해 4인의 남성의 군상을 그렸습니다. 사실 그게 제 일본 미술원 전람회에서의 첫 입상 작품이 됐습니다.

히지카타:그때부터 일본 미술원 전람회에 출품했나요?

카와시마:맞습니다. 원래 대학원이 아니면 공모를 못 했는데 제가 학부 4학년 때부터 그 제도가 사라지고 이것을 계기로 도전해 보려고 그린 작품을 일본 미술원 전람회에 냈는데 그것이 첫 입상한 것입니다. 입상한 것은 기뻤습니다만 정직한 감상으로는, 완성된 작품이 제가 생각한 이미지와 전혀 달라 완전한 졸작을 그려버렸다는 생각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히지카타:그것은 왜 그랬을까요?

카와시마:석채가루로 표현해야 한다는 어쩌면 강한 선입견이 작용했을지도 모릅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석채가루에 관해 자신의 생각 판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4학년 무렵으로, 작품으로 그려냄으로써 이룰 수 있는 무언가를 너무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다 그린 것을 보고, 특정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이 소재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졸업제작은 완전히 소재를 교체하고 먹을 주체로 제작한 작품으로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히지카타:지금의 이야기를 들으면, 일본 미술원 전람회의 첫 입선작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전부 부딪쳤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원래 하고 싶었던 표현을 조금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고, 현재의 독특한 모노크롬 세계가 생겼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네요.

색채가 풍부한 모노크롬의 세계

제작은 몇달이 결린 《Charmer》, 2023. 데생에서 시작해 일본화 제작 공정인 대하도까지 진행한 뒤 본화 제작에 들어간다.

히지카타:졸업 제작 이후로는 계속 모노크롬, 먹 주체의 작품을 제작 했는지요?

카와시마:제 작품은 주로 흑백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지만, 저 자신은 색의 미묘한 차이를 느끼면서 먹이나 기타 소재를 조금씩 바꾸고 있습니다.

히지카타:흑의 세계에 대해서는 조르쥬 루오(1871 - 1958)나 오딜롱 르동(1840 - 1916)도 언급하고 있는것 처럼 '먹에 오채가 있다'고 하면서 먹의 색상에 숨은 무한한 계조의 존재를 이야기 하니까요. 안료나 제작 관련해서 접근방법에 변화가 있었나요?

카와시마:졸업제작할때와 지금은 사실 기법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히지카타:어떤 식으로 바뀌었나요?

카와시마:인물을 그린다는 방향은 같지만 처음에는 먹으로 그릴 때 형태를 담지 못하고 관찰에 의지한 묘사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졸업 제작은 덩굴, 콘크리트, 만다라 등 모티브가 구체적이고 기호적인 것도 굳이 쓰곤 했습니다. 의미와 의미의 충돌로 회화로서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지금의 작품은 상징성이 높은 구상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히지카타:확실히 표정도 그렇게 느껴집니다.

카와시마:그래서 좀 더 형태적인 형상으로 제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의 안에서는 확실히 의미가 있지만 그것을 그냥 의미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감정에서 나오는 새로운 형태로서 다른 사람에게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카와시마 유 : PATHOS』,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

25세에 「FACE전」그랑프리를 수상한 후에도, 작품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완성시키기 위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카와시마 유 이지만 작품의 주제와 모티브는 일관적이다. 기사 후반부에서는 카와시마 작품의 핵심을 이루는 '불안'과 '소녀'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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